세계교회 협의회 제10회 부산 총회 보고 (전편)
수요일, 세계 교회 협의회(WCC) 부산 대회는, 개최 되었습니다. 대회는, 아침과 저녁 예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각양 각색의 예배를, 모두가 함께 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평화와 일치를 상기시키는 광경이 되었습니다.
동북 헬프의 이가타(井形) 이사, 이(李) 직원,그리고 저와 함께, 와타나베 소이치 화백 부부가, 개회 첫날부터 마당을 설치 했습니다. 우리들의 부스는 모퉁이의 각진곳으로, 부산시(釜山市)의 투어 데스크 바로앞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발을 멈추는, 좋은 장소였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후쿠시마의 영상을 중심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와타나베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커다란 존재감을 발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있어야 할 벽・•의자・•모니터가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열의를 가지고 상황에 부딪치면, 좋은 결과로 인도됩니다. 지금까지 받은 여러가지 「훈련」이, 여기에서 활용 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의 초점은, WCC본회의에 있어서, 핵발전소의 문제를 논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WCC에 새로운 전개를 초래하는 것이며, 또, 아시아•태평양의 연대를 만들어 내는 촉매 작용을 하는것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WCC는, 20년 이상 전 밴쿠버 대회에서, 핵 병기에 관한 반대 성명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핵 발전소에 대해서는, 아직, 총회 수준으로 논의된 적이 없으며. 이것에서 전환을 추구하는 계기는, 역시, 후쿠시마(福島)에 있었습니다. 2011년 가을 말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후, 자메이카에서, 「정의와 평화」를 테마로 한 WCC대회준비 회의가 있었습니다. 준비 위원의 커다란 노력 가운데, 예외적 조치로서, 이 회의 안에서 후쿠시마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WCC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라고 하는 결론이, 거기에서 내려졌습니다.
이 위기적 상황이, 그러나,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의 마음에 강한 불을 붙였습니다. 온 세계에서, WCC 본 회의에서 후쿠시마를 다루어야한다 라는, 강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작년 12월의 아이즈(会津) 회의에서의 결실로, 그리고 이번 WCC로 진행 된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어려운 상태 그대로 였습니다. 자메이카에서의 실수는 너무 큰 것이 었습니다. 우리들 동북 헬프도, 세계의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은 계속 해서 노력 했습니다. 한국・•대만・•뉴질랜드와 협동하고, 인도네시아・•필리핀의 협력을 얻어, 광범위한 로비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WCC는 개막 되었습니다. 일본 기독 교단에서 대의원•이토(伊藤) 목사님은, 본회의 최초의 플로어로부터의 발언자로서, 후쿠시마를 호소했습니다. 그 speack out를 시초로, 각 회의에서, 많은 후쿠시마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협력해 주신 세계의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다 표현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들 마당에도, 많은 사람이 와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의 회화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나, 대만 장로 교회,그리고 기다(木田) 목사님 (후쿠시마현, 그리스도교 연락회 대표) 등의 발제를 하는 「애드보커시•포럼」이, 우리들의 부스에서, 매일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11월1일 금요일, 하나의 「탄원서」가 완성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32 교단 교파, 85명의 대의원이,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후쿠시마의 문제를 배워 핵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성명을 내는, 청원서였습니다. 그 서명 활동에, 얼마나 많은 분들의 힘을 합하여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 청원서는 본회의에서 심의 되었습니다. 같은 성명을 요구하는 청원은, 20건이나, 제출 되었다고합니다 (저는, 그 때 대만의 프레젠테이션을 저희 부스에서 열기 위해서, 본 회의장에는 없었습니다. ) 그러는 중에, 우리들의 청원서는, 심의를 통과하고, 승인 되었습니다! 그 귀한 소식이 알려져, 우리들은 서로 기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동북 헬프의 이가타(井形) 목사님은, 이 보고를 받은 후,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대신에, 데이비트 •매킨토시씨와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나가노(永野)씨가, 우리들의 파티에 합류해 주셨습니다. 매킨토시씨는, 재일 대한 기독 교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선교사의 아드님, 나세르(Gamal Abdel Nasser)씨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일본인 무슬림입니다.
WCC 기간 중 토요일에, 고리(古里) 원전으로 향하는 여행이 있었습니다. 여행이라고 해도, 부산 시내에서 20킬로미만의 땅에 있는 원전으로, 「너무 가까운」 여행입니다. 우리들은, 그 원전이 있는 장소에서, 평화 행진을 하고, 원전 게이트앞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가와카미도, 영어로, 10분정도의 간증과 찬양을 했습니다. 원고 없는 영어 스피치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훌륭한 통역자 (장 윤재•이화 여자 대학 교수) 가 도와주셨기에, 그것은 신선함을 안겨 주는것이었다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어 코치를 해준 미나미산리쿠(南三陸)의 디아즈 선교사에게, 그저 감사 할 뿐 입니다.
11월8일, 대회는, 10일간의 심의로 마쳤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성명문은 채결 되지 못했지만, 총회는 중앙위원회에 이 심의를 부탁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즉, 이제부터, 성명문의 작성과 채택의 가부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여로는 아직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들은, 정말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들과 협동해 주신 뉴질랜드에서는, 40년전에 시작되어 20년전에 승리하고, 이 20년간 그것을 보유해 온, 「원전이 없는 나라가 되는 운동」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뉴질랜드도, 40년전까지는, 「영국에 따라 간다」를 국시로 하는, 일본을 닮은 나라 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풀의 뿌리 운동과 정부 수준의 활동을 서로 연결시키는 노력은, 그 상황을 전환시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격려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뉴질랜드 보고에서, 남태평양이 핵의 실험장이 되어 온 현실을, 우리들에게 상기 시켰습니다. 후쿠시마의 현실은, 이미 40년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것을, 우리들은 남태평양에서 부스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과의 함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후쿠시마의 문제가 희미해질 정도로, 수많은 심각한 문제가 산적하고 있다는것도, 확실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인신 매매, 이주 생활자의 노예 노동, 일상적인 강간, 폐기물 오염, 종교적 박해, 심한 빈곤 상황 속에서의 자연 재해, 내전과 망명에 의한 난민, 그외,그외. 그러한 사항의 호소를, 후쿠시마의 호소가, 저해하는 위험성은 없는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가와카미는, 이번, 「정의와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에큐메니컬 대화」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정의」와 「평화」와 「옳은 평화」라고 하는 세개의 언어를 둘러싸고, 진지한 신학적 토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 운동이나 인권 운동을 하기 위한, 결정적인 논의라고 이해하며, 그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 후쿠시마를 둘러싼 세계의 운동이, 우리들에게 머무르는 것이거나, 우리들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만”으로 머문다면, 이른 밤, 그것은 서리가 내린것 같을 것입니다. 아시아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라고 하는 목소리에, 왜, 항의 할것입니다. 피해자가 서로의 발을 서로 잡아 당기는 것은 안된다. 그렇지 않은 말이 필요하다. 다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할 수 있는, 자신의 문제를 다른 문제 속에서 찾아낼수 있는, 그러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패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논의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후쿠시마의 문제는, 이주 노동자의 문제와, 미군 기지의 문제와 함께, 아시아 태평양 연대를 만들어 내는 촉매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위하여는, 지금까지의 운동론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개인의 권리획득」의 차원에서 전개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운동론입니다만, 그것을 넘어, 「서로가 지탱하는 자립의 획득」에 진행하는 것. 이것은, 한신(阪神) 아와지(淡路) 대지진 재해 속에서 찾은 지원의 이론이었던 것을, 최근, 우리들은 「만남의 모임」 이라고 하는 속에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새로운 운동론에 있어서는, 포괄적인 것과 관대한 것을 열쇠로서, 교회나 사원 등의 종교 시설•단체가 활용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상, 세계 교회 협의회 제10회 부산(釜山) 총회 보고의 전편을 적었습니다. 후편은, 다음 주에 올릴 예정합니다.
(2013년11월18일 가와카미 나오야 씀)
동북 헬프의 이가타(井形) 이사, 이(李) 직원,그리고 저와 함께, 와타나베 소이치 화백 부부가, 개회 첫날부터 마당을 설치 했습니다. 우리들의 부스는 모퉁이의 각진곳으로, 부산시(釜山市)의 투어 데스크 바로앞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발을 멈추는, 좋은 장소였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후쿠시마의 영상을 중심으로 자료를 준비하고, 와타나베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커다란 존재감을 발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있어야 할 벽・•의자・•모니터가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와 열의를 가지고 상황에 부딪치면, 좋은 결과로 인도됩니다. 지금까지 받은 여러가지 「훈련」이, 여기에서 활용 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의 초점은, WCC본회의에 있어서, 핵발전소의 문제를 논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WCC에 새로운 전개를 초래하는 것이며, 또, 아시아•태평양의 연대를 만들어 내는 촉매 작용을 하는것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WCC는, 20년 이상 전 밴쿠버 대회에서, 핵 병기에 관한 반대 성명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핵 발전소에 대해서는, 아직, 총회 수준으로 논의된 적이 없으며. 이것에서 전환을 추구하는 계기는, 역시, 후쿠시마(福島)에 있었습니다. 2011년 가을 말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후, 자메이카에서, 「정의와 평화」를 테마로 한 WCC대회준비 회의가 있었습니다. 준비 위원의 커다란 노력 가운데, 예외적 조치로서, 이 회의 안에서 후쿠시마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WCC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라고 하는 결론이, 거기에서 내려졌습니다.
이 위기적 상황이, 그러나,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의 마음에 강한 불을 붙였습니다. 온 세계에서, WCC 본 회의에서 후쿠시마를 다루어야한다 라는, 강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작년 12월의 아이즈(会津) 회의에서의 결실로, 그리고 이번 WCC로 진행 된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어려운 상태 그대로 였습니다. 자메이카에서의 실수는 너무 큰 것이 었습니다. 우리들 동북 헬프도, 세계의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은 계속 해서 노력 했습니다. 한국・•대만・•뉴질랜드와 협동하고, 인도네시아・•필리핀의 협력을 얻어, 광범위한 로비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WCC는 개막 되었습니다. 일본 기독 교단에서 대의원•이토(伊藤) 목사님은, 본회의 최초의 플로어로부터의 발언자로서, 후쿠시마를 호소했습니다. 그 speack out를 시초로, 각 회의에서, 많은 후쿠시마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협력해 주신 세계의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다 표현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들 마당에도, 많은 사람이 와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의 회화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나, 대만 장로 교회,그리고 기다(木田) 목사님 (후쿠시마현, 그리스도교 연락회 대표) 등의 발제를 하는 「애드보커시•포럼」이, 우리들의 부스에서, 매일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11월1일 금요일, 하나의 「탄원서」가 완성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32 교단 교파, 85명의 대의원이,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후쿠시마의 문제를 배워 핵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성명을 내는, 청원서였습니다. 그 서명 활동에, 얼마나 많은 분들의 힘을 합하여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 청원서는 본회의에서 심의 되었습니다. 같은 성명을 요구하는 청원은, 20건이나, 제출 되었다고합니다 (저는, 그 때 대만의 프레젠테이션을 저희 부스에서 열기 위해서, 본 회의장에는 없었습니다. ) 그러는 중에, 우리들의 청원서는, 심의를 통과하고, 승인 되었습니다! 그 귀한 소식이 알려져, 우리들은 서로 기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동북 헬프의 이가타(井形) 목사님은, 이 보고를 받은 후,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대신에, 데이비트 •매킨토시씨와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나가노(永野)씨가, 우리들의 파티에 합류해 주셨습니다. 매킨토시씨는, 재일 대한 기독 교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선교사의 아드님, 나세르(Gamal Abdel Nasser)씨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일본인 무슬림입니다.
WCC 기간 중 토요일에, 고리(古里) 원전으로 향하는 여행이 있었습니다. 여행이라고 해도, 부산 시내에서 20킬로미만의 땅에 있는 원전으로, 「너무 가까운」 여행입니다. 우리들은, 그 원전이 있는 장소에서, 평화 행진을 하고, 원전 게이트앞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가와카미도, 영어로, 10분정도의 간증과 찬양을 했습니다. 원고 없는 영어 스피치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훌륭한 통역자 (장 윤재•이화 여자 대학 교수) 가 도와주셨기에, 그것은 신선함을 안겨 주는것이었다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어 코치를 해준 미나미산리쿠(南三陸)의 디아즈 선교사에게, 그저 감사 할 뿐 입니다.
11월8일, 대회는, 10일간의 심의로 마쳤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성명문은 채결 되지 못했지만, 총회는 중앙위원회에 이 심의를 부탁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즉, 이제부터, 성명문의 작성과 채택의 가부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여로는 아직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들은, 정말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들과 협동해 주신 뉴질랜드에서는, 40년전에 시작되어 20년전에 승리하고, 이 20년간 그것을 보유해 온, 「원전이 없는 나라가 되는 운동」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뉴질랜드도, 40년전까지는, 「영국에 따라 간다」를 국시로 하는, 일본을 닮은 나라 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풀의 뿌리 운동과 정부 수준의 활동을 서로 연결시키는 노력은, 그 상황을 전환시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격려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뉴질랜드 보고에서, 남태평양이 핵의 실험장이 되어 온 현실을, 우리들에게 상기 시켰습니다. 후쿠시마의 현실은, 이미 40년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것을, 우리들은 남태평양에서 부스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과의 함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후쿠시마의 문제가 희미해질 정도로, 수많은 심각한 문제가 산적하고 있다는것도, 확실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인신 매매, 이주 생활자의 노예 노동, 일상적인 강간, 폐기물 오염, 종교적 박해, 심한 빈곤 상황 속에서의 자연 재해, 내전과 망명에 의한 난민, 그외,그외. 그러한 사항의 호소를, 후쿠시마의 호소가, 저해하는 위험성은 없는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가와카미는, 이번, 「정의와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에큐메니컬 대화」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정의」와 「평화」와 「옳은 평화」라고 하는 세개의 언어를 둘러싸고, 진지한 신학적 토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화 운동이나 인권 운동을 하기 위한, 결정적인 논의라고 이해하며, 그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 후쿠시마를 둘러싼 세계의 운동이, 우리들에게 머무르는 것이거나, 우리들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만”으로 머문다면, 이른 밤, 그것은 서리가 내린것 같을 것입니다. 아시아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라고 하는 목소리에, 왜, 항의 할것입니다. 피해자가 서로의 발을 서로 잡아 당기는 것은 안된다. 그렇지 않은 말이 필요하다. 다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할 수 있는, 자신의 문제를 다른 문제 속에서 찾아낼수 있는, 그러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패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논의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후쿠시마의 문제는, 이주 노동자의 문제와, 미군 기지의 문제와 함께, 아시아 태평양 연대를 만들어 내는 촉매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위하여는, 지금까지의 운동론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개인의 권리획득」의 차원에서 전개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운동론입니다만, 그것을 넘어, 「서로가 지탱하는 자립의 획득」에 진행하는 것. 이것은, 한신(阪神) 아와지(淡路) 대지진 재해 속에서 찾은 지원의 이론이었던 것을, 최근, 우리들은 「만남의 모임」 이라고 하는 속에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새로운 운동론에 있어서는, 포괄적인 것과 관대한 것을 열쇠로서, 교회나 사원 등의 종교 시설•단체가 활용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상, 세계 교회 협의회 제10회 부산(釜山) 총회 보고의 전편을 적었습니다. 후편은, 다음 주에 올릴 예정합니다.
(2013년11월18일 가와카미 나오야 씀)